아이디어 샘솟는 공간은 엉뚱한 곳이었네 / 지지부진하던 소아마비 백신 개발 / 성당 천장 바라보다 불현듯 떠올라
구글-MS 회사내 ‘빈둥대는 곳’ 마련 / 직원들 상상력 자극… 생산성 높여
1950년대 미국의 면역학자 조너스 솔크 박사는 소아마비 백신 개발에 인생을 걸었다. 몇 년간 연구에 매달렸지만
좀처럼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. 기분 전환을 위해 그는 이탈리아에 갔다.
이곳저곳을 둘러보던 그는 어느 날 13세기에 지어진 성당을 방문했다. 성당의 높은 천장을 바라보다 불현듯 포르말린을
통해 소아마비 바이러스를 억제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. 즉시 귀국한 그는 이 아이디어를 활용해
백신 개발에 성공했다.
솔크 박사는 연구실에서 풀지 못한 문제를 성당에서 해결한 이유가 성당의 천장이 높았기 때문이라고 믿었다. 과연
그의 생각대로 천장의 높이와 창의성 사이에 연관성이 있을까.
놀랍게도 수십 년 후 그의 믿음은 사실로 밝혀졌다. 건축물의 구조가 인간의 창의성, 집중력, 인지능력 등에 큰 영향을
준다는 실증 연구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.
○ 높은 천장을 지닌 솔크연구소
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한 덕에 솔크 박사는 미국 샌디에이고에 자신의 이름을 딴 연구소를 지을 수 있었다. 그는 당대
최고의 건축가인 예일대 건축학과의 루이스 칸 교수에게 건물 디자인을 의뢰했다.
이때 솔크 박사는 칸 교수에게 모든 연구실의 천장 높이를 3m로 해달라고 부탁했다. 자신이 수년간 씨름하던 백신
아이디어가 연구실이 아닌 13세기 고성당에서 나온 건 높은 천장과 깊은 관계가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곁들였다.
세계 각국 실내 공간의 천장 높이는 대부분 2m40 정도다. 좀 높더라도 2m70에 불과하다. 솔크 박사의 부탁은 당시
건축계의 관행으로 보면 매우 이례적이었지만 칸 교수는 이를 흔쾌히 수용했다.
1965년 설립된 솔크연구소는 생명과학과 생명공학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곳이다. 현재 700여 명의 연구원과
300여 명의 직원이 상주하고 있다. 규모가 그리 큰 연구소는 아니지만 솔크연구소가 이뤄낸 성과는 놀랍다. 지금까지
노벨상 수상자만 5명을 배출했고, 이곳을 거쳐 간 노벨상 수상자도 수십 명이다.
솔크 박사뿐 아니라 이 연구소의 다른 과학자들도 높은 천장이 창의성을 자극한다는 데 동의한다. 하버드대나
매사추세츠공대(MIT)에 있을 때보다 이 연구소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더 많이 나온다고 말하는 연구자가 많았다.
하지만 과학적 실험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많은 사람은 솔크연구소 사람들의 이런 생각을 ‘그들만의 미신(urban myth)’이라
불렀다.
○ 천장이 높을수록 창의력 향상
2008년 솔크연구소 사람들의 생각이 단순한 미신이 아니라는 점이 밝혀졌다. 미국 미네소타대의 조앤 마이어스-레비 교수와
그의 동료들은 2008년 8월 ‘소비자 행동 저널(Journal of Consumer Behavior)’에 천장의 높이와 인간의 창의성이 어떤
상관관계를 지니는지에 대한 연구 결과를 게재했다.
연구진은 실험 참가자들을 천장이 각각 2m40, 2m70, 3m인 방 안에 넣고 똑같은 문제를 풀게 했다. 그 결과 3m 천장의 방에서
두 개의 서로 다른 개념을 연결하는 문제를 푼 참가자들은 다른 피험자보다 2배 이상 더 잘 풀었다. 특히 천장이 가장
낮은 2m40의 방에서는 참가자들이 이 문제를 거의 풀지 못했다.
영국 심리학자 리처드 와이즈먼도 그의 저서 ‘59초’에서 ‘점화(ignition)’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는 데 도움을 준다고
밝혔다.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자극하려면 불을 점화하듯 창조성을 자극하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.
와이즈먼 교수는 고민거리가 있다면 완전히 다른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게 오히려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줄 때가 많다고
주장했다. 즉 미술관에서 현대 미술품을 보거나, 잡지나 신문을 뒤적이거나, 무심히 인터넷 검색을 시도하는 등의 행동이 새롭고
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는 데 도움을 준다고 강조했다.
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(MS) 등은 회사 내에 직원들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생각할 수 있는 별도의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.
이 공간에 편히 기댈 수 있는 의자, 아무 생각 없이 보면서 웃을 수 있는 잡지와 책, 넓은 유리창, 뇌를 각성시키는 커피나 홍차도
둔다.
창의성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처럼 직원들이 빈둥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놓으면 생산성이 훨씬 높아진다고 강조한다.
창의적 아이디어란 고양이의 낮잠처럼 무심히 찾아오기 때문이다.